top_banner

소수서원
조회수 16731회


사적 제55호로, 중종 38년(1543)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평소 흠모하던 회헌 안향의 사당을 숙수사지에 세우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550년 명종이 친필로 글자를 새긴 편액을 하사했으며, 350여 년 동안 퇴계 문하생을 비롯한 유생 4,000여 명이 학문을 닦은 유서 깊은 곳이다.





1. 소수서원 가는 길


학문과 인품을 내재하고 의리와 지조로 살아가며, 관직과 재물을 탐하지 않고, 의로운 일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이 선비정신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소수서원으로 드는 길에서도 격조가 느껴지는 듯, 예절이 깃든 듯하다.





2. 소수서원 입구


솔 향 가득한 길을 지나 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굳센 선비의 기상을 나타내주는 듯한 소나무 군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어느 때고 닥칠 고난에도 이겨낼 수 있는 참된 선비가 되라는 의미에서 '학자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랜 세월, 그저 묵묵히 서원과 함께하며 그 자리를 지켜온 그 모습이 어쩐지 늠름하다.  





3. 숙수사지 당간지주


학자수 길을 따라 서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보물 제59호인 숙수사지 당간지주.
소수서원이 원래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이것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안쪽 면과 달리 바깥 면은 중앙에 세로띠를 새겼다.
통일신라시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미를 살린 모습에서 당당함을 느끼며, 소혼대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4. 소혼대


적송들의 숲으로 이어진 길로 따라가면 소혼대가 나온다. 소혼(消魂)대는 유생들이 공부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던 자리로, ‘암연소혼자 유별이이의(暗然銷魂者 唯別而已矣)’이라는 이별을 노래한 시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별을 노래한 쉼터라, 혹 숙수사지 터에 수많은 영혼들의 한이 어우러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5. 성생단

소혼대 바로 옆에 성생단이 있다. 소수서원에서는 매년 봄, 가을(음력 3월, 9월) 제를 올렸는데, 이때 제물인 희생(짐승)의 적합여부를 심사하고, 잡던 곳이 바로 성생단이다.

성현에 대한 제를 올릴 때, 일정한 장소에서 그 제물의 흠결까지 꼼꼼하게 살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임금이나 하늘에 드리는 제사에는 반드시 소나 양이 쓰였고 그 외에는 보통 돼지가 제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6. 죽계천과 징검다리

'죽계별곡'의 무대, 죽계천. 대나무가 맑은 시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죽계천은 소백산 국망봉에서 발원해 소수서원과 영주 선비촌을 가로지르는 하천이다.
잔잔히 흐르는 죽계천 위, 섶 다리를 연상케 하는 징검다리는 죽계천 풍경 속에서 더욱 정겹다. 이제 강학당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7. 강학당

배움을 익히고 공부하는 강당(보물 제1403호)으로, 소수서원의 경내에 자리해 있으며 중종 37년(1542)에 건립됐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로 사방에 너비 1m 정도의 툇마루를 두르고 기단 네 모서리에 추녀를 받는 활주를 설치했다.
내부 대청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편액이 높게 걸려 있는데, 전체적으로 웅장한 모습이다.





8. 문성공묘

소수서원의 경내에 있는 사당(보물 제 1402호)이다.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인 안향을 주향(主享)으로, 안축(安軸), 안보(安輔),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2004년 보물 제1402호로 지정되었으며, 매해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날 제향을 올린다.





9. 정료대와 관세대

정료대는 요판·요주·요대 3개의 석재로 이루어져 늦은 밤, 관솔을 태워 서원을 밝혀주었고, 관세대는 사당을 참배할 때 이곳에 대야를 올려놓고 손을 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앞의 장서각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10. 장서각

문성공묘와 직방재 사이에 서원이 소장했던 책과 목판을 보관하던 장서각이 있다.
오늘날 대학 도서관에 해당하는 이곳은, 배흘림기둥에 전면2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임금님이 직접 지어 하사하신 3천여 권의 장서 등 많은 책들을 보관, 당시로서는 최고였던 것 같다.
이제 좀 더 깊이 있게 학문이 다뤄졌을 터로 이동해보자.  





11. 직방재와 일신재

‘깨어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 이곳은 학문의 단계에 따라 건물이 나뉘는데, 직방재에 이르러야 비로소 명륜당이라 불리는 강학당에 들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날이 새로워지라’는 뜻의 일신재는 스승(원임(院任))들이 쓰던 방으로 두 공간이 한 동에 위치하고 있다.
오래된 세월만큼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12. 전사청

전사청은 중종 37년(1542)에 풍기 군수 주세봉이 봉향집기(제사용 그릇)를 보관해 두던 곳으로 전면 3칸의 건물이 조금 작은편이다.
봄, 가을 제향 때마다 집사들이 제사음식을 마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13. 영정각

직방재 뒤쪽으로 위치한 영정각(影幀閣). 원래 소수서원에 없던 것으로, 지난 1975년 영정을 모시기 위해서 별도로 건립하였다.
이곳에는 주세붕과 안향을 비롯해 남송시대 주자학자인 주희, 선조 때의 명재상인 한음 이덕형 등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특히 안향의 초상화는 국보 제111호로, 주세붕 초상화는 제717호로 지정되어 있다.





14. 학구재와 지락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요즘의 기숙사를 이른다.
‘학구재’는 숫자 ‘3’이 학문을 상징해 세 칸으로, 공부를 잘하라는 의미로 工자형으로 지어진 것이 재미있다.
또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가르침으로 스승의 숙소보다 뒤쪽으로 지어졌다.

‘지락재’는 배움이 깊이를 더 할수록 즐겁다는 뜻으로 부박하게 가공되지 않은 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엔 사료관으로 가자.





15. 사료관

학구재 뒤 협문을 지나면 소수서원 사료관(史料館)이 나온다.
사료관은 소수서원의 역사관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안에는 소수서원의 역사와 계보, 그리고 소수서원에서의 서원의 기능과 역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특히 서원의 두 가지 기능인 '제향'과 '강학'에 관한 디오라마를 제작하여 목판, 고서 등 관련유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16. 충효교육관

충효교육관은 160석의 좌석에 시청각 기기 등을 갖춘 현대식의 교육시설로, 1992년에 건립하였다.
학술 세미나 및 연수 장소로 이용되고 있고, 현관에는 서예와 탁본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17. 탁청지

충효교육관을 빠져나오면 담장 너머로 예스러운 넉넉함이 묻어나는 탁청지(濯淸池)가 나온다.

이곳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류운용 선생이 풍기 군수로 재임할 때 연못을 파고 대를 쌓았던 곳으로, 못 옆으로는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그늘이 되어주어, 전통의 숨결을 느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18. 백운교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을 이어주는 다리, 백운교이다.
풍류와 여유가 묻어나는 풍경 속에서  취하는 휴식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보낸 다리 위를 걷기 역시 운치 있다.
풍경에 좀 더 취할 수 있는 광풍정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19. 광풍정

다리를 건너자 광풍정이 나오는데, 광풍대는 퇴계 이황선생의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광풍정은 4각 정자로 200년에 세웠으며 앞으로는 죽계가, 뒤로는 연화산에 둘러싸여 있어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음은 물론, 인근에 광풍대가 있어 풍경에 한 번, 정취에 또 한 번 넋을 놓게 된다.





20. 취한대

소수서원 옆을 흐르는 죽계천이 잠시 소(沼)를 이루는 곳에 취한대가 자리 잡고 있다.

명종 5년인 1550년에 지은 정자는 오랜 세월로 무너져버렸으나, 다시 터를 닦아 정자를 지었다.
‘푸른 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의 취한(翠寒)은 옛 시 〈송취한계〉에서 따온 것으로,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고 노송이 푸르른 자태를 자랑한다.





21. 성황숲

죽계천 너머 야산자락에 있는 듯 없는 듯 들어선 취한대(翠寒臺) 옆으로 성황 숲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숲.
그 우거진 숲이, 가을날 붉게 물든다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함이 느껴지는데, 신을 만나기 위해 그 숲에 들어서려면 먼저 마음을 정갈하게 해보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법을 숲이 알려줄지도 모른다.




Select LanguageSelect Languag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