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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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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어느 곳이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 속엔 언제나 생활과 전통이 녹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처럼, 아는 만큼 더 먹고 싶어지는 음식, 바로 순흥 묵밥이 그런 음식이다.  

순흥 묵밥은 메밀로 만드는데 메밀을 이야기할 때면 누구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이란 글을 떠올리게 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을 달빛이 비치는 산비탈, 작고 앙증맞은 하얀 꽃이 벌판에 점점이 뿌려져 있으니 마치 소금을 뿌린 듯 하고 그 광경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표현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그러나 메밀은 그렇게 아름다운 이야기 속 음식은 아니다. 척박한 땅이나 추운 곳에서 잘 자라 예로부터 흉년이 들 때마다 중요성이 강조되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렇기에 그 역사 또한 우리네 고통의 역사와 함께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영주시 순흥면은 조선시대 초까지만 해도 경북행정의 중심인 순흥도호부가 있었던 지역으로 타 지역보다 풍족하였지만, 세조3년 단종복위를 꽤하는 거사가 발각되면서 쑥대밭이 되었다. 피끝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생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마을이 황폐해져 버렸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고마운 식량이 바로 메밀이었고, 그때부터 메밀묵밥이 유명해졌다고 한다.  

메밀묵은 우리네 긴긴 겨울밤 향수어린 음식이다. 지금은 듣기 어렵지만, ‘메밀묵 사~려’ 라는 짧지만 강한 외침은 그 소리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나 다른 먹거리가 풍족해지자 어려운 시절 먹던 거친 음식으로 낙인찍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  

최근 웰빙과 다이어트가 붐을 일으키며 메밀음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메밀묵은 수분이 80%를 차지하는 음식. 그래서 칼로리가 낮지만 배는 빨리 부르게 한다.

곡물 중 거의 유일한 기능성 작물로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해줘 변비에 좋고, 피를 맑게 해주어 혈압도 안정시켜주며 비타민B2도 많아서 웰빙과 다이어트에 안성맞춤인 것이다.  

찾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 제대로 된 메밀묵을 판매하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묵을 먹는 민족은 우리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묵은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묵을 만드는 과정은 구도승처럼 끈기와 집중을 요한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말 그대로 ‘묵사발’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영주 순흥지역에 가면 옛 전통 가마솥 방식으로 토종 메밀묵을 만들어 묵밥을 주는 곳이 아직도 있다.

온갖 양념을 곁들여 입에 집어넣으면 ‘후두둑’ 맛있는 소리가 절로 목구멍을 넘어 간다. 노란 조밥과 함께 말아 먹으며 느끼는 포만감. 가슴 한구석에서 옛 추억도 함께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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