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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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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오죽헌은 우리나라 대표 어머니상 신사임당(1504∼1551)과 그의 아들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다.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음을 증명하듯 세계최초로 모자가 나란히 화폐에 등장했으며, 바로 이곳이 그 위인들의 역사적인 탄생지였음을 되새겨본다면 풀잎 하나, 글자 하나에서 더욱 깊은 뜻이 느껴진다.

집 주위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율곡의 이종사촌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은 데서 비롯된 ‘오죽헌’.

신성한 곳에서만 그 뿌리를 내린다는 오죽처럼, 뭇사람의 마음바탕에 어지럽게 그어진 생각들을, 그 경계를 이곳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떼어가며 지워본다.
                                                          

                      





1.신사임당 초충도 화단

우리나라 대표 여성상하면 단연 신사임당이 꼽힐 만큼 여인으로서 그의 현숙함은 오늘날까지 널리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효녀로서, 어진 부인으로서의 삶이 전부였다면 그녀가 여성최초로 화폐에 등장하는 일은 아마도 없지 않았을까.

그림과 자수에 능했던 신사임당의 작품성은 이미 예부터 인정돼왔다. 숙종임금이 대궐에 병풍을 치고 감상했다는 초충도 8폭. 그리고 그 여덟 폭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풀벌레들과 금방 이슬을 머금은 맨드라미, 봉선화를 실물 화단으로 만날 수 있다.

길 따라 우측에 마련된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 이곳에서 신사임당의 정교한 관찰력이 붓끝에서 마술처럼 표현되는 과정을 그려보자.






2.자경문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자경문.

‘자경문(自警文)’은 금강산으로 들어갔던 율곡이이가 20세 되던 해 외가인 오죽헌으로 돌아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정표를 세우고 스스로 좌우명을 삼은 것을 말한다.

큰 뜻을 품고 그 시작을 울렸던 율곡이이의 원대한 포부가 자경문의 웅장함 속에 전해지는 듯하다.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문을 통과해본다.






3.문성사

자경문을 통과해 우측으로 율곡이이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문성사가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제각이 있던 자리였으나 75년 정화사업을 진행하며 어제각을 서쪽으로 옮기고 이곳에 문성사를 지었다.

‘문성(文成)’은 1624년 인조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문성사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건물이 보인다.






4.오죽헌

문성사 좌측에 자리한 오죽헌.
조선 초기 지어진 별당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당시 건축양식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왼쪽 마루방은 율곡 선생이 어린 시절 성현의 길을 기약하며 학문을 하던 곳이며, 오른쪽 방은 신사임당이 1536년 12월 26일 율곡을 낳은 곳이다. 태몽인 용꿈을 따 이름 붙여진 몽룡실, 숭고한 존엄성이 완성된 그곳에서 또 한 번 그 숙연함에 고개를 숙인다.

이어 오른쪽으로 난 샛문을 통과해보자.






5.바깥채와 안채

신사임당과 그 식구들의 생활상이 묻어 있는 곳.
바깥주인과 안주인이 각각 거처했던 이곳은 양과 음의 조화가 오묘하게 흐르며 안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빠끔히 들여다본 방안, 신산한 세월이 묻어난 이곳에서 그들 삶의 채취가 그윽하게 피어나는 듯하다.
다시 주방을 끼고 사잇문을 지나면 어제각이 보인다.






6.어제각

1788년 정조임금은 율곡 선생이 쓴 ‘격몽요결’과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궁궐로 가져오게 한 다음, 율곡 선생의 학문을 찬양하는 글을 새겨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별도의 집을 지어 보관토록 했는데, 그 어명을 받들어 지은 곳이 바로 ‘어제각’이다.






6-1.어제(御製) 어필(御筆)

어제(御製) 어필(御筆)

무원 주자의 못에 적셔내어
공자의 도를 본받아
널리 베풂이여
율곡은 동천으로 돌아갈 것만
구름은 먹어 뿌려
학문은 여기 남아있구려

율곡이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에는 정조임금이 친히 율곡 선생을 찬양한 글이 새겨 있다.






7.율곡기념관

자경문 앞마당으로 되돌아 나오면 율곡기념관이 있다.
율곡 이이의 유품 소장각으로,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건립되었다가 1975년 정화사업 때 철거, 1987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내부에는 율곡이이가 소나무를 보호하는 글귀를 적은 호송설의 탁본과 함께 친필 암석각자, 격몽요결 등이 보존돼 있다.

또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과 8폭 화첩을 비롯해 그 가족들의 유품 등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을 나와 우측에는 선사유물 등이 있는 야외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옛 집터와 돌방무덤 등을 통해 선조들의 장묘문화와 생활방식을 둘러보다 보면, 시립박물관 앞에 다다른다.






8.강릉시립박물관

너른 광장 가장자리에는 향토민속관과 시립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특히 강릉단오제와 강릉농악 등이 디오라마로 작품 전시된 향토민속관이 흥미롭다. 단오장 풍경 속에는 신명나는 농악놀이와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듯한 난전, 그네를 뛰는 여인들의 표정까지 섬세하게 표현돼 있어 곳곳마다 피어나는 이야기들을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또 강릉지역에서 출토된 각종 선사유물과 고문서 등이 전시된 시립박물관을 통해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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