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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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척추 백두대간 정중앙에 자리한 대관령은 예로부터 강릉지방에서 평창, 원주, 서울로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의 관문이었다. 조선 초까지만 해도 사람 한둘이 간신히 다닐 정도였으나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란 자가 길을 넓혀놓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지방에 부임 받아 오는 관원이 멀리 푸른 바다가 바라다 보이자 세상 끝까지 당도하였다하여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임기를 마치고 떠나갈 때 그동안 정들었던 것을 생각하며 울면서 넘었다하여 울고 넘는 고개라는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또 곶감 100개를 챙겨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율곡이이가 굽이를 넘으며 힘들 때마다 곶감을 한 개씩 먹었는데 대관령을 다 넘고 보니 딱 한 개가 남아 있었다고 하여 대관령을 아흔 아홉 굽이라고 한다.
겨울이 되면 관원행차와 진상품을 나르도록 눈을 밟아준 답설꾼과 가마꾼인 교군(轎軍)이 있었고, 산적이 자주 출몰해 사람을 모아 무리 지어 길을 지났다고 하여 ‘하제민원’이라는 지명이 생기기도 했다.
옛 선비들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넘나들던, 장돌뱅이들이 보따리를 이고 오가던 대관령 옛길의 풍경은 세월 속에 묻혔지만, 깨끗하고 원시적인 자연은 그대로 남아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길을 선사하고 있다.
1.국사성황당
구 대관령휴게소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국사성황당이 자리해 있다. 단옷날이 다가오면 대관령 옛길은 신성한 길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 대관령 국사성황신의 위패와 신목을 앞세운 행렬이 대관령 옛길을 따라 내려가기 때문이다.
대관령 국사성황당에는 신라 말기의 강릉 출신 고승인 범일국사가 모셔져 있다. 진성여왕 3년 5월 1일에 입적하여 대관령 성황신으로 모셨는데, 국사성황신이 한번 화를 내면 반드시 영동지방에 홍수, 폭풍, 감무, 질병 등 갖가지 재앙이 따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이 노여워하지 않도록 매년 음력 4월1일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대관령 국사성황당을 지나면 옛길이 시작됨을 알리는 수풀이 펼쳐진다.
2.국사성황당에서 반정 가는 길
대관령 국사성황당을 지나 옛길로 들어서는 순간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울창한 숲과 나만이 존재하는 고요함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태엽이 한 칸 앞으로 감겨 순식간에 다른 시공간에 들어선 느낌이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반정’이라 쓰인 표지석이 보인다.
3.대관령 반정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과 싱그러운 향기를 맡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반정에 이르렀다. ‘반정(半程)’은 옛 사람들이 구산역에서 출발하여 횡계역까지 가는 길의 중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걸음을 멈추고 이곳에서 잠시 풍경을 감상해보자.
4.반정에서 바라본 강릉시내 풍경
하늘이 쾌청한 날이면 바다를 끼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어내는 강릉 시내를 한눈에 보인다. 드넓게 펼쳐진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오밀조밀 모여 있는 시가지의 풍경이 괜스레 다정하게 느껴진다. 계속 길을 따르다보면 이병화 유혜불망비가 보인다.
5.대관령옛길 유혜불망비
이병화 유혜불망비는 순조24년(1824) 대관령 인근에 살던 어흘리 주민 또는 이곳을 오가던 장사꾼들이 기관 이병화의 선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관 이병화는 인정이 많은 향리(지방 하급관리)로, 겨울철 대관령을 오르내리는 길손들이 추위에 떨거나 얼어 죽는 일을 막기 위해 반정에 주막을 짓고 어려운 나그네에게 침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어 자작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등 갖가지 활엽수들이 내뿜는 상쾌한 나무향이 온몸에 배어들 무렵 신사임당의 사친(思親)시비가 보인다.
6.대관령 사친시비
사친시(思親詩)는 신사임당이 친정을 떠나 서울 시집으로 갈 때 대관령 고갯길에서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시로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시비에 옮겨 놓았다. 이 아름다운 숲길이 사임당에게는 늙은 노모를 홀로 두고 가야하는 가시밭길이었으리라.
〈신사임당 사친시〉
慈親鶴髮在臨瀛 : 자친학발재임영
身向長安獨去情 : 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平時一望 : 회수북평시일망
白雲飛下暮山靑 : 백운비하모산청
늙으신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이 몸은 홀로 서울로 가네
돌아보니 고향은 아득히 멀고
저무는 산에는 흰 구름이 난다.
7.곳곳의 돌무더기
옛길에는 작은 돌들이 뾰족뾰족 솟아있어 자칫하면 다치기 쉽다. 짚신을 신었던 옛 선조들은 길가의 돌이 자칫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까 걱정하여 돌을 세 개씩 주워 서낭당 당목 주변에 쌓았다. 이렇게 쌓인 돌은 국난이 발생하거나 정월대보름 석전(石戰)을 할 때 돌팔매용으로 썼다.
이제는 돌팔매질을 할 이유가 없어졌지만 그 옛날 대관령을 넘는 길손들에게 도움을 베풀던 옛 선조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돌 세 개씩 주워 누석단을 쌓아보자. 타인을 배려하는 작은 행동이 후에 좋은 복으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8.대관령 옛길에서 만난 다람쥐
울창한 수목과 맑고 투명한 바람, 이름 모를 야생화와 귀여운 다람쥐 등 원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대관령 옛길은 답답한 도심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휴식과 잃어버린 감성을 선사한다. 계속 걸음을 옮기다보면 간간이 들리던 물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대관령 옛길의 계곡이 그 청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9.시원하게 땀을 씻어주는 계곡물
그 옛날 험준한 고개를 넘던 길손들의 고된 여정을 촉촉하게 적셔주던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 맑고 깨끗한 계곡물에 손 한번 적셔보고, 목 한번 축여본다. 계곡 인근에는 주막터가 보인다.
10.대관령옛길 주막터
계곡에서 목을 축인 옛 나그네들은 주막에 이르러 버거운 여장을 풀 수가 있었다. 지금은 대나무와 돌배나무만이 빈터를 지키며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이곳은 험한 고개를 넘는 나그네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대관령 옛길 막바지에는 원울이재가 나타난다.
11. 원울이재
원울이재는 옛날 왕명을 받고 임지를 찾아 강릉으로 오던 관헌들이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고, 임기가 끝나 돌아갈 때는 훈훈한 인심에 감명을 받아 눈물을 흘렸던 곳이라고 한다. 원울이재를 넘으면 바로 대관령박물관이 보인다.
12.대관령박물관
대관령박물관은 1993년 5월 15일에 설립한 시립박물관으로, 홍귀숙 선생이 평생 모은 민속품 2,000여점과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 유물을 테마별로 전시한 박물관이다. 청룡방, 백호방, 현무방, 주작방, 토기방, 우리방 등 6개 전시공간에 옹관, 토기, 목불, 고려청자 민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야외전시장에서는 장승과 동자석, 문관석 등을 감상할 수 있다.